1. 작별인사의 줄거리
철이는 IT 분야 연구원인 아버지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소년이다.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고양이를 돌보고, 조깅을 하며 지내던 평범한 삶. 그러나 철이는 유능한 IT 연구원이었던 아버지 덕에 또는 탓에,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안전하고 안락한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놀라게 하려 몰래 따라가던 철이는 누군가에게 잡혀가게 되고, 수용소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철이는 수용소에서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마음이 맞는 존재들과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그러는 도중 다양한 위험을 이겨내며, 본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철이는 본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낯선 수용소에서 본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존재들로 인해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고, 결국은 본인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실제로 본인을 인간으로 생각하는 휴머노이드가 이런 마음을 겪게 될까, 짠해지기도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철이와 같은 인간의 정서,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를 인간으로 보아야 할까, 로봇을 보아야 할까.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
2. 소설의 제목, 작별인사의 의미
작별인사라는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일까? 가족간의 가슴 아픈 이야기일까?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어떻게 보면 식상할 수 있는 제목인데, 내용은 전혀 식상하지 않고 새롭게 느껴졌다. 요즘 이슈가 되는 주제인데, 김영하 작가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도 새로웠던 장편소설이다. 김영하 작가가 쓴 SF소설이라니. 기대한 만큼 너무나 흥미로운 소설이었고 또 김영하 작가의 다른 책처럼 작별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끝에는 인류의 소멸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인간은 결국 끝을 맞이하게 되고, 철이 또한 주위 사람들을 모두 떠나 보낸 이후 스스로 작별을 준비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철이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한때 유능한 연구원으로 모두의 인정을 받던 남자인데, 마지막은 매우 초라하고,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또 한명의 인상 깊은 인간은 바로 '선아'이다. 인간인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다. 인간인 선아와 휴머노이드인 달마는 민이를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된다. 민이는 길지 않은 삶 동안 여러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는데, 인간인 선아는 이 기억들을 온전히 간직한 채 다시 깨어나 민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극복해 내길 바란다. 그런데 달마는 이와 반대로 굳이 고통을 다시 살려낼 필요가 있나라고 이야기 한다.
만약 민이가 이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내가 민이라면, 선아와 같은 생각으로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도 가지고 가겠다.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고통이 있기에 기쁨도 있고, 끝이 있기에 현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론 고통은, 최대한 겪고 싶지 않다.
3. 김영하 작가가 9년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다양한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며, 방송 프로그램 출연으로도 유명한 김영하 작가가 9년 만에 발표한 책이 「작별인사」이다. 김영하 작가는 알려졌다시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영학도이지만 출중한 글솜씨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소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방송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는데, 다양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조리 있는 말솜씨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김영하 작가의 방송 분량이 적으면 아쉬울 정도였다.
이렇게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것 치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은 「작별인사」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소설은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는데, 오래전에 읽어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선뜻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지 못했던 이유가 있는데, 무언가 밝은 느낌의 책은 아니라는 점에서였다. 깊은 생각을 하게 하고,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작별인사를 계기로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 매우 흥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늘 생각만 하고 읽지 못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를 조만간 꼭 읽기로 다짐을 해본다.
'도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0) | 2023.03.26 |
---|---|
최은영 작가의 4대에 걸친 이야기, 밝은 밤 (0) | 2023.03.24 |
지구 멸망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지구 끝의 온실 (0) | 2022.07.25 |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0) | 2022.03.06 |
자기애의 늪에 빠진 완전한 행복 리뷰, 정유정 작가 (1) | 2022.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