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 끝의 온실, 그리고 지구의 멸망을 담은 소설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더스트'의 증식으로 지구가 멸망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스트'에 대한 내성이 있는 내성종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끈질기게 도망치고 맞서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작가의 말에서도 나타났듯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간성과 자연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 이 세계를 재건하고자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펼쳐지는데,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작지만, 최대한의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던 지구를 구해낸다.
2. 소설 속의 더스트란 무엇인가
어느 순간 지구에 퍼져버린 '더스트'는 인간,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치명적인 무언가다. 인간은 이런 더스트를 피해 돔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는데, 한정적인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생활할 수 있기에, 쫓겨나거나 돔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은 더스트와 인간을 피해 떠돌면서 생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프롬 빌리지'는 언뜻 평화로운 사람들이 모여 만든 평화로운 세계 그 자체로 보인다. 프롬 빌리지 속 또 다른 온실은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세계로 보인다. 온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레이첼과 그가 만드는 더스트 해독제, 더스트를 억제할 수 있는 그의 식물들까지. 레이첼은 세계를 구할 인물인 듯 보이지만 레이첼은 세계를 구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고, 프롬 빌리지를 노리는 침입자의 공격이 계속되자 완벽한 세계로 보였던 프롬 빌리지 역시 끝을 맞이하게 된다. 온실 밖과 교류를 하지 않는 레이첼과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기술자 '지수'라는 인물은 '프롬 빌리지'를 건설한 리더 격의 인물이지만 프롬 빌리지의 끝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3. 악마의 식물로 묘사되는 '모스바나'란
소설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모스바나'는 엄청난 증식력을 자랑하는 덩굴식물로 폐허 도시에서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알 수 없는 푸른 빛을 띄는 모스바나는 식물생태학자 '아영'의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 내고 모스바나에 관한 이야기를 추적해 나간다. 2129년의 식물생태학자 아영, 2058년 더스트로 멸망한 시대의 나오미와 아바라. 두 이야기가 제 3장에서 연결되는데, 그 중간에는 노인 '이희수'가
있다.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아영과 나오미, 아바라. 그리고 이희수까지 악마의 식물 '모스바나'가 그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더스트의 증식을 막는 식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독성이 있는 식물, 인간의 병을 낫게 하는 약초. '모스바나'를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데, 결국 모스바나는 어떤 식물인지 소설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
4. SF 작가 김초엽의 첫 번째 장편소설
김초엽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소설을 통해서이다. 낯선 SF, 우주라는 소재를 낯설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을 통해서였는데, 이번에는 지구의 멸망, 더스트, 식물이라는 새로운 소재의 장편 소설을 출간하였다.
식물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식물이라고 하면 '수동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 숨쉬는, 생명이 있긴 하지만 무언가를 해낼 수는 없는 존재이며 주위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구 끝의 온실에서 식물은 조용히 무언가를 해내는 존재로 그려진다.
또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게 되는데, 나 역시 그 상황에 놓여져있다면,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상황.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외면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신할 수 없는 마음이 부끄럽기도 하다.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에는 짧은 이야기 7편이 담겨있다. '방금 떠나온 세계'라는 제목으로 유추해 볼 때, 또 다른 우주의 이야기일지, 무언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일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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