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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이순자의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by 단호한 단호박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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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1. 어머니를 위해 딸이 펴낸 유고 산문집 

이순자 작가님의 산문집인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작가님의 따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펴낸 유고 산문집이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부터 20대 청년 시절, 아이를 낳은 후 노년 시절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따뜻하고 정 많은 이야기,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 어딘가 서러운 고군분투 취업기, 황혼 이혼을 겪은 아픔과 작가님의 종교 이야기까지. 작가님의 일생이 다 담겨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마치 우리 할머니인듯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간의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지는 않은데, 가장 처음 읽게되는 이야기는 예순 살에 깨꽃이 된, 따뜻하고 조금은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작가님은 예순 살, 적지 않은 나이에 시골 생활을 하고자 평창에 낡은 집을 사서 살게 되는데, 이웃집에 사시는 아흔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예순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아흔의 노부부에겐 그저 귀엽고 걱정되는 새댁인 것 같다. 시골 마을에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보니 서로에게 정을 느끼고 또 다시 떠날까 걱정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전쟁 탓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매들을 키우는 어머니 아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작가님을 통해 가슴이 아프다가, 20대 때 종교 활동을 통해 자신을 찾아 나가는 작가님을 응원하다가, 장애를 고백하며 힘겨웠던 날들을 털어내는 작가님을 대신해 눈물도 흘리다가 바람을 피우고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하는 남편을 향해 대신 욕을 하다보면, 책 한권이 순식간에 끝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우리 할머니, 엄마가 떠오르는 책 

책을 읽다보면 특히나 정이 많은 작가님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하지. 라고 느끼다가도 이런 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또 죄송스럽기도 하다. 작가님은 장애가 있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 먼저 배려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듣지 못한다는 것에 짜증내고, 귀찮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외할머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나이가 들수록 귀가 어두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거늘, 할머니와 조금 더 이야기하지 못하고, 더 살갑지 못했던 것에 후회가 되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더 표현하지 못했는지, 하늘에 계신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지는 책이었다. 

작가님은 힘든 시절, 종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신 것 같았다. 나는 무교이지만 종교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응원하게 된다.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살아갈 힘을 얻는 종교는 참 좋은 것 같다. 

또 작가님을 통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볼 수 있는데, 남편으로 부터 많은 상처를 받으며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자식들, 그리고 결국은 이혼을 택한 것도 자식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낸 자식들을 하나 둘 내보낼 때 겪은 엄마의 마음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대단하다. 딸을 수녀원에 보내고, 2년만에 만나는 그 날을 보름 앞두고 설레서 밤잠을 설치는 모습에 소녀같은 엄마의 마음을 같이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 

 

 

3. <돌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책의 4부에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한 편 실려있다. 제목은 <돌봄>으로 식물인간이 된 여자와 여자를 돌보는 남자의 집에 장애인활동보호사로 일을 하는 내용이다. 남자의 나이는 쉰,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여자를 돌보는데 둘의 사이가 부부도 아니고, 예전에 서로 의자하게 기대었던 사이인 것 같다. 처음엔 남자 보호자를 경계하던 작가도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 사랑을 느끼게 되고 점차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데, 참 안타까우면서도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고,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법한 이야기인데 또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줄을 통해 음식을 공급하면 훨씬 편할텐데, 환자의 몸에 좋지 않으니 수고스럽더라도 직접 음식물을 먹이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텐데 '사랑'만으로 이런 일을 실제로 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존경스럽다. 가족이라도 이렇게 돌보는게 쉽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행복해지자.

제목만 읽고도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책이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늘 담겨있던 책인데 오랜만에 방문한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첫 이야기를 읽자 마자 '읽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정많고 사랑 넘치는 작가님의 모습에 많이 반성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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